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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가전업계가 '유령(A Ghost)'에 위협당하고 있다. A Ghost는 와카바야시 히데키 피노웨이브인베스트먼츠 사장 겸 최고투자책임자(CIO)가 자신의 책 ‘일본의 전기산업은 이렇게 해야 소생한다’에서 소개한 조어로 회사의 머리글자에서 따왔다. A는 애플, G는 구글, HO는 대만의 홍하이(鴻海)정밀공업, S는 삼성전자, T는 대만의 수탁 반도체 제조업체 TSMC를 말한다.
 

  그는 일본의 주간 경제지 <주간 다이아몬드>와의 인터뷰에서 "약 20년간 PC나 영상음향기기는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 두 회사가 이끄는 체제였으나 점점 ‘A Ghost’들에게 무너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애플의 스마트폰 '아이폰'이나 태블릿PC '아이패드'의 경우 제조는 홍하이정밀공업이 맡고 있고, 마이크로프로세서나 반도체 칩은 삼성전자와 TSMC가 공급 중이다.
 
   지금까지 정밀부품의 제조에서는 최첨단 기술력을 갖춘 일본기업이 강하다고 여겨져 왔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은 셈이다. 애플과 구글이라는 앞에서 싸우는 플레이어를 홍하이나 삼성전자, TSMC라는 힘센 배후세력이 떠받치고 있는 구도 속에 일본기업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샤프, 도시바가 애플에 액정패널을 공급하고 있으나 점유율 면에서 LG, 삼성, 대만의 AUO에 밀리고 있다.
 
   이제까지 일본 가전업계의 제품 판매는 “독자적 기능을 추가하면 팔린다”라는 발상에서 출발했다. 이것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애플처럼 소프트웨어나 콘텐츠로 차별화해 고객의 지지를 받는다는 발상은 물론 부품의 전 세계 조달을 통해 원가를 낮추겠다는 노력도 없었다. 이러다 보니 1980년대를 풍미했던 소니의 '워크맨' 같은 획기적 상품이 잘 나오지 않고 있다.

   와카바야시 사장은 앞으로 대부분의 일본 액정TV는 대만 등의 전자제품 수탁제조 전문기업(EMS : Electronics Manufacturing Service)이 만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폭스콘’ 브랜드로 유명한 세계 최대의 EMS인 홍하이는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 외에 이미 소니의 액정TV와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의 게임기(Wii, DS) 등을 하청받아 생산하고 있다. 한편 도시바는 브랜드력 유지를 위해 초고가품만 자사에서 만들고 나머지 대부분은 EMS에 위탁하고 있다. 그러나 큰 적자를 내지는 않지만 큰 이익도 바랄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러면 일본 가전업계는 박형TV 사업을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와카바야시 사장은 “TV를 '가구'라고 인식해야 한다. 영상의 아름다움, 응답속도의 빠르기 등 기능성을 추구해 TV만의 가치를 높인다는 전략은 안 된다. 주택업체나 건축·설계사무소와 연계해 TV의 존재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집안의 다른 생활가전제품과의 연계, 가구와의 디자인 조화성 등을 감안해 TV를 설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애플과 구글은 생활가전을 갖고 있지 않고, EMS는 생활가전 제조를 잘 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A Ghost'의 전성기는  4~5년으로 끝날 것이다. 'A Ghost'와 싸우지 않는 전략을 세워 대전환을 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무역협회 발간 무역월간지 International Trade 2012년 2월호 게재 원고)